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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칼럼 문학

서리, 억새풀, 그믐달의 세 장치 ― 오기석의 한국하이쿠 「귓가에 서리」 읽기

오늘은 오기석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 잠시 숨고르기를 해 볼까 합니다. 세 개의 장치인 서리-억새풀-그믐달을 감상해 봅시다.귓가에 서리돌아서니 억새풀그믐달 홀로 -오기석-한국하이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계절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 작품에서 계절...

문학 필자 김수성 2026.04.29 조회 87
서리, 억새풀, 그믐달의 세 장치 ― 오기석의 한국하이쿠 「귓가에 서리」 읽기

문화평론가 김수성


오늘은 오기석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잠시 숨을 고르며, 한국하이쿠가 짧은 형식 속에서 어떻게 깊은 시간과 존재의 감각을 품어 내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서리”, “억새풀”, “그믐달”이라는 세 개의 이미지가 서로 맞물리며,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문턱과 인간 삶의 황혼을 동시에 불러낸다.


귓가에 서리
돌아서니 억새풀
그믐달 홀로


― 오기석


한국하이쿠에서 계절말은 작품의 시간과 정서를 여는 중요한 장치이다. 위 작품에서도 계절말은 단순히 배경을 알리는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서리”, “억새풀”, “그믐달”은 각각 자연현상이면서 동시에 인간 존재의 감각을 비추는 상징적 장면으로 기능한다.

첫 구절인 “귓가에 서리”는 매우 인상적이다. 서리는 보통 밤사이 기온이 내려가며 생기는 자연현상이지만, 여기서는 ‘귓가’라는 신체 부위와 결합하면서 단순한 계절 묘사를 넘어선다. 귓가에 내려앉은 서리는 차가운 공기의 감각이면서, 동시에 흰머리와 노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귀는 소리를 듣는 기관이고, 서리는 사라질 운명을 가진 차가운 흔적이다. 그러므로 “귓가에 서리”는 늙어 감의 시간, 지나온 삶의 소리, 그리고 어느 순간 문득 찾아오는 인생의 냉기를 함께 품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구절인 “돌아서니 억새풀”은 시선의 전환을 보여 준다. 화자는 무언가를 듣거나 느낀 뒤 돌아선다. 그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억새풀이다. 억새풀은 가을의 절정을 대표하는 식물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때문에 흔히 쓸쓸함과 시간의 흐름을 상기시킨다. 시작구의 서리가 차갑고 미세한 감각이었다면, 억새풀은 넓은 들판과 바람의 움직임을 불러오는 이미지이다. 이때 작품은 청각적 감각에서 시각적 풍경으로 옮겨 간다. 귓가에서 시작된 서늘함이, 돌아서는 순간 억새풀의 풍경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마지막 구절인 “그믐달 홀로”는 작품 전체를 고독과 성찰의 방향으로 이끈다. 그믐달은 사라져 가는 달이다. 보름달처럼 충만하지 않고, 초승달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기운도 약하다. 그믐달은 빛이 거의 사라져 가는 순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빛, 사라짐을 향하면서도 아직 남아 있는 존재의 흔적이 바로 그믐달이다. 따라서 “그믐달 홀로”는 단순한 밤하늘의 묘사를 넘어, 인간이 결국 혼자 자신의 존재를 마주해야 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세 개의 계절적 장치를 통해 무상(無常)의 감각을 드러낸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은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이치이다. 서리는 해가 뜨면 사라지고, 억새풀은 바람에 흔들리며 마른 계절을 지나가고, 그믐달은 어둠 속에서 사라져 다시 차오를 시간을 기다린다. 세 이미지는 모두 사라짐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순환의 가능성도 품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정서는 단순한 소멸의 슬픔에 머물지 않는다. 사라짐과 다시 시작됨이 하나의 흐름 안에 있음을 조용히 보여 준다.

또한 이 작품에는 내면적 고독의 감각이 짙게 배어 있다. “그믐달 홀로”라는 표현은 자연의 외로운 풍경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에는 홀로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 고독은 반드시 비극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존재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하는 성찰의 자리이다. 니체가 인간에게 외부의 가치에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듯, 이 작품의 화자 역시 자연의 이미지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라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동양적 사유와 맞닿아 있다. 억새풀과 그믐달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화자의 마음을 비추는 존재들이다. 인간은 자연을 바라보며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자연의 흐름 속에서 삶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이는 장자의 사유에서 말하는 자연과의 자유로운 합일, 곧 억지로 무엇을 이루려 하기보다 세계의 흐름 속에서 존재의 자리를 받아들이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오기석의 하이쿠는 자연을 인간 감정의 장식으로 쓰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삶을 더 넓은 흐름 속에서 이해하도록 이끄는 장치가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한 겨울밤의 정경을 노래한 하이쿠가 아니다. “서리”, “억새풀”, “그믐달”이라는 세 이미지는 노년, 시간, 고독, 무상, 성찰의 감각을 겹겹이 불러낸다. 특히 이 작품의 힘은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늙음이나 외로움, 덧없음이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는 세 장면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그 정서에 도달한다. 이것이 한국하이쿠가 지닌 압축의 힘이다.

결국 오기석 작가의 「귓가에 서리」는 사라져 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사라짐은 절망이 아니라, 삶의 흐름 속에서 받아들여야 할 필연의 과정으로 제시된다. 서리는 사라지고, 억새풀은 흔들리고, 그믐달은 어둠 속에 홀로 남지만, 그 모든 이미지는 다시 계절의 순환 속으로 돌아간다. 이 작품의 고독은 비극적 고립이 아니라, 존재가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짧은 세 줄 안에서 자연과 인생, 계절과 철학, 감각과 성찰이 함께 놓인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하이쿠가 단순한 짧은 시가 아니라, 삶의 깊은 시간을 응축하는 문학 형식임을 잘 보여 준다.



[참고]


불교의 무상(無常, impermanence) 개념은 모든 존재가 고정된 실체로 머물지 않고 변화와 소멸의 과정 속에 있다는 사유에 기반한다. 『잡아함경』을 비롯한 초기 불교 경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핵심 개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인(Übermensch) 개념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본격적으로 제시되며, 외부의 절대 가치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는 사유와 연결된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사상은 『장자』 「소요유」 편에 나타나는 개념으로, 인위적 집착을 벗어나 자연의 흐름 속에서 자유롭게 존재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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