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하이쿠연맹 Korea Haiku Fed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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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 · 김수성 · 게시: 2026년 1월 30일 · 작성: 2026년 1월 31일 03:00 · 수정: 2026년 5월 6일 20:08 · 조회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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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적 전환과 감각의 전화로 읽는 한국하이쿠― “한 줄의 문턱”에서 세계가 바뀌는 순간문화평론가 김수성 문학에서 비유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비유는 세계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향을 바꾸는 장치이다.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부르지 않고 다른 무엇으로 옮겨 부르는 순간, 의미는 단순히 대체되지 않는다. 그 대상이 놓여 있던 감각의 질서 자체가 새롭게 배열된다. 이 감각의 재배열이 바로 문학적 전환이며, 한국하이쿠는 그 전환을 가장 짧은 호흡 속에서 수행하는 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문학적 환경은 빠르고, 조각나 있으며, 동시적이다. 플랫폼의 리듬 속에서 텍스트는 실시간으로 유통되고, 감정은 댓글과 공유를 통해 순식간에 집단적 정동으로 증폭된다. 이러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짧은 형식의 문학을 곧 얕은 문학으로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오히려 짧은 형식은 언어를 줄임으로써 감각의 밀도를 높이고, 설명을 덜어냄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세계를 다시 느끼게 하는 방식에 가까워진다. 짧음은 빈약함이 아니라 압축이며, 압축은 깊이에 이르는 또 다른 통로가 된다. 이때 그 통로를 여는 핵심 장치가 바로 비유적 전환과 감각의 전화(轉化)이다. 전환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하나의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는 문턱이다. 문학은 오래전부터 그 문턱을 계절의 형상으로 만들어 왔다. 특히 겨울은 동아시아 문학에서 정한(情恨), 침잠, 고요, 기다림의 계절로 읽혀 왔다. 그러나 겨울을 단순히 소멸의 은유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겨울은 모든 것이 멈춘 시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미가 응축되고 다음 생성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겨울의 고요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다시 배열되기 위한 여백이며, 끝이 아니라 문턱이다. 이 지점에서 겨울은 전환의 시간으로 읽힌다. 문화인류학자 빅터 터너가 말한 리미널리티, 곧 ‘문턱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겨울은 낡은 질서가 완전히 끝났지만 새로운 질서가 아직 굳어지지 않은 경계적 시간이다. 이 경계에서 인간은 일상의 익숙한 질서로부터 잠시 벗어나며, 문학은 그 틈에서 새로운 감각의 리듬을 실험한다. 한국하이쿠가 겨울을 다룰 때 중요한 것은 겨울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다. 겨울의 의미를 길게 해설하는 대신, 겨울이 남긴 징후 하나를 조용히 놓는 일이다. 하이쿠적 사고는 원인을 장황하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결과의 미세한 표면을 보여 준다. 감정의 이름을 직접 붙이지 않고, 그 감정이 스며들 수 있는 사물과 풍경의 배열을 만든다. 젖은 장갑, 식어 가는 찻잔, 문 앞에 멈춘 발자국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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