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리들이 한꺼번에 몰려오지 않는다는 것이 참 고맙습니다. 말하자면 “틈”이 있습니다. 소리와 소리 사이, 숨과 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의 작은 빈자리. 그 빈자리가 오늘의 기분을 정리해 줍니다. 저는 그 ‘여백’이야말로 하이쿠와 가장 닮은 자리라고 종종 느낍니다.
주전자를 올려놓고 기다리는 동안, 컵을 꺼내고, 찻잎을 조금 덜어 놓습니다. 손끝이 차갑다 싶어 손바닥을 잠깐 비비고, 다시 천천히 움직입니다. 창가 유리에는 김이 맺혀 있고, 손가락으로 살짝 문지르면 투명한 선이 생깁니다. 그 선 하나가 지나간 자리만 잠시 맑아져서, 바깥의 겨울빛이 ‘조금 더 선명하게’ 들어옵니다.
잠깐 후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그 소리가 ‘큰소리’가 되기 직전의 순간이 좋아서, 저는 늘 그 지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보글보글로 넘어가기 직전의 얇은 진동, 마치 한 줄의 시가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의 망설임 같은 것. 그 짧은 망설임이 있기에, 말이 너무 쉽게 소비되지 않고, 마음속에서 한 번 더 굴러갑니다.
하이쿠를 처음 접했던 2005년 무렵에 저는 “짧으면 세계가 좁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쓰오 바쇼(松尾芭蕉)가 살았던 에도 시대(江戸時代)의 하이카이(俳諧) 문화—여럿이 모여 말을 주고받고, 장면을 공유하고, 일상의 감각을 벼리는 풍토—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 시대의 하이쿠는 단지 ‘짧은 시’가 아니라, 비워 두는 방식으로 세계를 넓히는 기술에 가까웠습니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독자의 감각을 불러내고, 그 감각이 각자의 삶과 연결되며 확장되는 것이니까요.
글을 쓸 때 “설명”을 줄이고 “감각”을 남기는 것은 어떠할까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손끝이 차가워서 찻잔이 더 단단하게 느껴지는 감촉
창밖의 공기색이 겨울답게 맑아 보이는 순간
끓는 물소리 사이로 잠깐 나타나는 고요
마음이 조용해질 때, 문장이 과장 없이 정리되는 느낌
이런 요소들이 모이면, 굳이 ‘교훈’을 말하지 않아도 글의 중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중심은 대개 “삶의 배경”에서 나옵니다. 오늘의 배경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다만, “겨울 아침의 준비”라는 작은 생활이 있었고, 그 생활 속에서 제 마음이 잠깐 정돈되었습니다. 그 정돈이 한 줄의 시를 부를 만큼 충분했습니다.
끝으로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계시다면 함께 권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를 ‘대단한 이야기’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창가의 김 한 줄, 물 끓는 소리의 틈, 손끝이 차가워지는 순간 같은 작은 장면을 붙잡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장면을 정확히 적는 동안, 마음도 정확해집니다. 그리고 그 정확함이야말로 마치 여백이 만들어 주는 선물과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