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와 시조 그리고 하이쿠의 변천사?

by webmaster posted May 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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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3]

조선통신사와 시조 그리고 하이쿠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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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을 휩쓴 코로나19 팬데믹과 엔데믹의 중심에서 BTS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한류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던졌다. 한류의 본질은 한글 미학이다. 어렵게 포장한 클래식을 내려놓고 솔직함으로써 보편적 세계문화를 건드렸다. 국가 간 외교는 언제나 첨예한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다. 정치적 담론과 더불어 문학이 개입된 조선통신사는 조선과 일본 양국이 체험한 전쟁의 기억을 걷어내고 새로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공존의 경로를 찾으려 했다.


   조선 통신사 문학의 주체는 한시담론으로 전개된 필담창화를 주도한 삼사(三使)와 제술관 등 양반사대부 중심으로 이루어진 점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통신사 문학담론의 또 다른 주체였던 왜학역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분적으로 양반사대부의 하위에 속했던 중인층이면서 그들의 일본 시가문학 활동은 공개적으로 담론화할 수 없는 어디까지나 주변의 문화였고, 개인적 차원에 머물러야 했다. 즉 언어적 자질과 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으나, 당시 유교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던 조선 내에서 일본문학이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설령 있었다 해도 제도권 문학의 인정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왜학역관이야말로 통신사 활약뿐만 아니라, 와카(和歌)와 하이쿠(俳句)와 같은 일본 시가문학의 이해자이자 창작주체였다는 사실을 평가해야 한다.


   왜학역관이 향유했던 일본문학이란 숨겨진문학적 활동에 다름 아니었다. 조선의 문학공간에서 은폐된 일본시가문학은 통신사행의 시공간에서 드러남으로 표출되었다. 왜학역관에 의한 와카(和歌)와 하이쿠(俳句)의 수용과 창작은 통신사 문학 주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예컨대 카가노 치요죠(加賀千代女)라는 여류 시인이 하이쿠를 지어 통신사에게 헌상했다는 것은 일본어를 통한 일본문화를 알렸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만약 그때 통신사 일행 중 누군가 우리나라의 시조를 소개했더라면 양국의 교류는 문학을 통해서 보다 더 진지한 교류가 되지 않았을까. 그만큼 하이쿠는 쉬운 문학이다.


   한문(漢文) 중심의 필담창화의 종속적, 보조적 존재로 머문 왜학 역관의 전모는 시정되어야 하며, 아울러 일본문학을 이해하고 창작을 통하여 조선과 일본 양국 간의 바람직한 외교담론의 형성에 기여한 국제적 감각을 겸비한 교양인으로 평가되어야 하듯이 한국하이쿠의 경로 또한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한글미학을 수출하는 세계문학으로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한국하이쿠연맹 사무총장

문학박사 안수현